글 연성 23

범후경진-Sub

그 녀석을 좋아했던 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네가 처음 나에게 웃어주었던 그 순간. 네가 나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그 순간부터, 난 너에게 다른 마음을 품었다. . . 난 내가 서브인 게 너무나 싫었다. 돔의 명령에 반박조차 못하고 따라야 한다는 게. 그렇게 지나가던 철없는 친구들의 장난에 세 번쯤 당해 곤욕스러웠을 때부터, 난 내가 서브인걸 아예 부정하기로 마음먹었었다. 가장 절친이었던 너에게까지 숨겼을 정도로 말이다. 아, 그래도 생각해 보면 최악은 아니었다. 그 덕분에 돔이었던 너랑 이런 관계로 이어질 수 있었으니까. 첫 경험이 술 먹고 한 실수였다는 건 그리 웃긴 일은 아니었지만, 뭐 어떤가? 조금 창피하긴 했어도 싫지는 않았는데. ... 아니, 조금 많이 창피하긴 했지만. 놀랍게도 네가 한 명령..

글 연성 2024.06.02

현우연하-자각

이연하.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될 리는 없었다. 내가 그 아이를 그런 마음으로 좋아한다면 그게 금수 새끼가 아니면 도데체 무엇인가. 8살 차이인, 그것도 동생 친구인 그 아이를. 그렇게 나는 자신해왔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작은 변화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잠시 외출하고 돌아오던 길, 언제나처럼 길을 가던 중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정체는 내가 못 알아들을리 없는, 동생의 노랫소리였다. '그리고보니 오늘 버스킹은 이 근처라 했었나. ' 평소와 다름 없을 늘 들어왔던 버스킹이었지만, 사이로 들려오는 묘한 일렉 소리에 나는 홀린듯이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가본 그곳은 역시나 평범했다. 조금 다른 점이었다면 사람이 평소보다 더 많았단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 중심..

글 연성 2024.04.16

유하나-사망(수정)

유혈살인소재주의 "토라노 하나, 따라올래?" 친한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은결이와 숨바꼭질을 하던 너무나도 평범한 하루에. 나는 당연히 아저씨를 따라갔고, 순순히 아저씨가 가자는 방에 들어갔다. 그렇게 방문을 닫던 순간이었다. 푹 그때였다. 차가운 날붙이가 날 찔렀던 것은. 익숙지 않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멈췄다. 나를 찌른 칼은 붉게 물들어갔고, 무슨일인가 싶어 올려다보았을땐, 여전히 웃고 있는 아저씨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아저씨 왜그래..나 뭐 잘못했어?" 난 다시 밝게 웃었다. 아픔을 잊기 위해, 미움받지 않기 위해. 그래봤자 바뀌는건 없었지만. "아저씨 진짜 나빴다, 재밌게 놀고 있었는데." 별 의미없는 소리였다. 그저 전처럼 웃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더이상 그럴 수 없다는..

글 연성 2024.04.11

알렉아멜-Before That Day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알렉산더 스텔링, 사랑하는 그와의 결혼식. 나는 바쁘게 결혼식 준비를 마치고 풀썩 침대에 누워 내 손을 바라보았다. 정확힌, 손의 반지를 바라보며 그날을 떠올렸다. " 나와 평생을 함께 해줄래? "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그때의 그 감정을, 표정을. 옛날의 나였으면 상상도 못 할 행복이었다. 당연했다. 이전의 내 몸상태는 미래를 꿈꾸기엔 너무나도 허약했으니까. 내가 이렇게 회복한 것은 정말로 기적이었다. 수치가 이젠 정상이라며 완치를 말하던 의사를 보고는 얼마나 눈물이 날뻔했는지, 그날 생각만 하면 아직도 조금 부끄러울 정도였다. 이런 부끄럽던 생각도 하며 나는 조심히 반지를 어루만졌다. 그가 제작한 반지는, 정말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행복에 잠겨있던 때였다. 쾅-!..

글 연성 2024.04.11

공부하기싫은자의발악

엘리마르 요즘 신경쓰이는 악마가 생겼다. 아시와 왁왁대며 싸우고 있던 큰 갑옷의 그 악마. 붉은 머리에, 위험하다며 아무리 내쳐도 다가오는 그 악마가. "정말, 위험하다니깐요..! " 아무리 밀어내도 그 악마는 계속 나에게로 다가왔고, 나는 그 악마가 천천히 다가올수록 내 마음도 바뀌는게 느껴졌다. 처음은 무서움. 다음은 호기심. 그리고, ... 나는 정말 큰일났다는 것을 크게 느껴버렸다. 바티리베 " 바티! 뭐해~? " 여전히 무뚝뚝한 너에게, 난 오늘도 밝게 웃으며 방방거렸다. 네가 웃지 않아도 나는 괜찮단듯이. " 너는 왜 그렇게 웃어? " 어느날 누가 나에게 물었다. 왜 전처럼 웃어주지도 않는데 그리 밝게 웃고 있는거냐고. 하지만 그 질문만큼 멍청하게 들리는 것도 없었다. 나에게 활짝 웃어주는 바..

글 연성 2024.03.31

좀아포-서아

아이는 혼자였다. 사정으로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자, 그녀는 자연스레 혼자가 되었다. 같이 있어주었던 친구조차 어느 날부턴가 활만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아이는 너무나도 외로웠지만, 달리 해결책도 없었다. 그랬던 아이의 인생에도 변화가 있었다. 신경 써주는 후배도 생기고, 늘 찾아와 주는 선배도 생겼다. 오랜만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보러 오는 것도. 좋아하는 걸 받는 것도. 받은 선물에서 느껴지던 온기도, 누군가의 장난도. 너무나도 기뻤다. . . 그 행복을, 다시 느낄 수 있을지 모를 그 행복을. 물린 어깨에서 터져 나오는 피를 무시한 채 되새기며 아이는 말했다. " 선배는 꼭 끝까지 사는 거예요. " 그래, 그런 행복을 선물해 준 사람을 위해 이 정도쯤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글 연성 2024.02.16

[UNKNOWN] - 아이

늘 웃는 얼굴. 상냥한 목소리.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다정한 사람이라 판단하기 좋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무감정의 극치. 섬뜩한 조직의 개. 그것이 그녀, [Unknown]이었다. . . 처음 기억이 있을 때부터, 그녀의 세상은 이 작은 조직이 전부였다. 아니, 작은 줄조차 몰랐다. 이 세상이 그녀의 전부였으니까. 그러니까, 그 작은 세상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건 그녀에겐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건 그 작은 아이를 만나고서 바뀌었다. 그날도 평범한 임무였다. 그녀는 상부의 명령대로 타깃을 제거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것. 그곳엔 예상치 못한 누군가가 있었다. 회색 머리의 작은 아이. 그 아이는 주사기를 내게 겨누곤 작은 강아지처럼 파들파들 떨..

글 연성 2024.02.12

여원.

나는, 능력이 생기고 나서는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술을 안 마실 때만큼은 다정했던 아버지는 내 능력을 안 이후론 더 이상 다정한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환청을 없애는 능력. 이 힘은 아버지에게도 그렇게나 간절한 능력이었나 보다. 능력이 생긴 이후론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기억이 한동안 없었던걸 보면 말이다. 물론 집을 나온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왜 하필 아버지의 환청이 들렸던 건지. 귀에 들리는 다정한 목소리도, 사나운 목소리도 나에게는 고통스러운 소리일 뿐이었다. 미칠 것 같았다. 그래도, 그래도 버텼다. 그러고는 내 힘으로 남들을 도우고 다녔다. 환청으로 폭주하려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자유를 선물하며 세상을 여행했다. 하지만, 결국엔 다들 아버지처럼 될 ..

글 연성 2024.02.01

마르바스-친우

소중한 친우가 있었다. 더 이상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긴 세월을 함께해 준. 모두가 떠나버린 후에도 내 곁에 남아준, 너무나도 소중한 친우가 있었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빛나던 그 아이. 나는 상냥하고 강했던 그 아이를 언제나 동경했다. 나에게는 과분한 친우였던 그였지만. 그는 언제나 내 곁에 있어주었고, 나는 그 덕분에 과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평화로운 나날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끔찍한 천마전쟁. 온갖 피비린내에 으스러져만 가는 생명으로 가득했던 그때. 전쟁도, 죽음도 너무나도 싫었던 나는 정말로 끔찍이 모든 걸 끝내고 싶었으나, 지옥의 대의장이자 군단을 이끄는 신분이었던 나는 그 참혹한 전쟁에 참전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강제로 참전한 전쟁, 그 전쟁에서 후방지휘를 하고..

글 연성 2024.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