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연성 23

성민-소망

행복이란 유한한 것이다. 사람의 정이란 쉽게 바뀌는 존재이며, 기댈 때 즈음엔 상처란 흔적만 남기는 것이다. 그것이, 아이가 그동안의 인생에서 배워온 법칙이었다. 아이는 기다렸다. 그 온기가 자신을 버릴 날을. 자신에게 던져진 작은 흥미가 끝날 날을. 아이는 더이상 기대하지 않으려 했다. 그게 자신이 배워온 세상이니까. 그렇기에 아이는 계속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이 버려질 날을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는 조용히 빌었다. 그럼에도 이 온기가 조금 더 이어진다면, 이 순간이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계속되기를. 더이상 이 온기를 영영 보지 못한다 해도 그립지 않을 때 까지만, 이 사랑과 이별할 용기를 가질때까지만이라도 지속되길. 아이는 조용히 소망했다.

글 연성 2024.09.28

화람성민-선택

정말 두려운 사람이었다. 자신이 오메가임을 부정하고 악착같이 살아오던 사람에게 운명의 짝이라니. 아무리 밀어내도 붙어오던 그에게 강제로 각인까지 당했을 때는 정말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아, 난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옛날과 같은 삶은 꿈도 꾸지 못할 거란 절망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내 생각과는 달랐다. 그는 내 세상을 망가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하게 보듬어주곤, 화사히 웃어주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찌 되었든 짝이니 겉치레를 신경 써 주는 것일까. 온갖 추측이 떠오르는 그 시간 속에서, 그는 천천히 내 세상 속으로 들어왔다.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겉치레라도 처음 받아보는 호의를 감히 누가 쉽게 거절할 수 있을까. 그래서였을까, 나는 ..

글 연성 2024.09.19

전시나-누나

상해, 살해 묘사 주의 나는 바보같은 쌍둥이가 한 명 있다. " 뭐야, 너 갖고 있던 돈 어디갔어? " " 아 그거, 저 친구가 집 갈 돈이 부족하다길래.. 헤헤.. " " ? 그거 삥뜯긴거잖아 이 바보야!! "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때부터 그랬다. 지가 삥을 뜯기고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바보같은, 그런 쌍둥이가. 그런 쌍둥이가 하나 있다. 정말 이상적인 가족이었다. 다정한 부모에 조금은띨빵해도 착한 혈육까지. 그랬다. 물론 그날 전까진 말이다. " 시나, 시나야, 엄마가, 아빠가 안움직여.. " 놀이터에서 놀고 들어오자마자 들은 소리였다. 들어온 집에는 따뜻하게 나를 맞아주는 엄마아빠같은건 없었다. 대신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잘못되었단건 아는지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면서 겁에 질린 채 말하는 내 쌍둥이..

글 연성 2024.08.17

전시운-키

상해, 사망?소재 주의? " 어디보자.. 195cm네요. " " ..네? " 남들한테는 뭐가 이리 크냐며 놀랄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내 키는 그 일 이후로 멈췄었으니까. 멈춰버린 내 꿈과 함께 그대로 멈춰버렸으니까. " 너흰 언제까지 그렇게 살거니? " 입양해주신 어머니께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어릴 적 당한 사고에 부모님을 잃어버린 우리 둘을 거둔 분. 우리는 돌보지도 않고 돌아다니면서 저런 소리나 내뱉는걸 보면,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닌듯 싶지만 말이다. 그런 사람이 매일같이 내뱉는 그딴 공놀이는 언제 그만둘거냐는 말은 늘 지긋지긋하게 다가왔다. " 시나 넌 그렇다 쳐도, 시운이 너는 성적도 괜찮으면서... " 뒷이야기는 뻔했다. 성적도 나쁘지 않..

글 연성 2024.08.17

칼리엘레-온기

누군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라고 묻는다면, 전 두 기억을 뽑을거예요. 주인님이 절 처음 거두신 그 순간, 그리고 바로 지금. 주인님을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쓸모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지금을 뽑을거예요. " 히, 주인님 괜찮으세요..? " 저는 기뻐요, 주인님을 위해 이 한몸을 바칠 수 있다니. 근데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거예요? 전 정말 괜찮아요 주인님. 그러니까, 그러니까 마지막에도 계속 절 위해 웃어주시면 안될까요? ... xxxx년 겨울, 춥디 추운 겨울의 마지막 온기의 끝이었다.

글 연성 2024.08.12

일기

××××년 1월 13일 별 다를 바 없는 하루였습니다. 악마 무리 소탕엔 성공하였고 단원들은 모두 무사한 채 복귀에 성공하였습니다. ××××년 2월 1일 단원 하나가 부상을 당했습니다. 악마에게 한눈을 팔다 부상을 입었다 하니, 다음부터는 유의깊게 지켜봐야겠습니다. ××××년 2월 12일 전장에서 이상한 악마를 마주쳤습니다. 전신을 갑옷으로 감싼 그는 절 보자마자 다가오더니 태연히 아는 척을 하였습니다. 여태껏 살면서 악마와 연을 쌓은 적은 없었는데. 처리는 하지 못했습니다. ××××년 2월 18일 이상한 악마를 한 번 더 마주쳤습니다. 대신 이번엔 전장이 아니었지만. 술에 취해 보인 듯한 그는 이번에도 절 마주치자마자 접근하였습니다. 한껏 이상한 표정을 지었단 것이 걸렸지만 무사히 나오는 데에는 성공하..

글 연성 2024.07.12

호인이한-호의

난생 처음 가이드가 생겼다. 그것도 S급에, 남들에게 사랑받는 가이드. 힘도 못다루는데 성격까지 더러워서 기피되는 나랑은 정 반대인, 그런 녀석. 늘 기피당한 탓인지 그녀석이 보이는 호의는 너무나 어색했다.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누가 나한테 이렇게 다정하게 대해준게. " 이한 에스퍼님, 그럼 가이드를.. " "아, 그냥 좀 꺼져!! " 하지만 내 몸은 머리를 따라주지 않는다. 분명 그만큼 잘 대해주고 싶은데 말이 자꾸 헛나온다. 상처입히고 싶지도 않은데 자꾸만 주먹이 나간다. ...근데 사람이 뭐이렇게 약한지, 분명 그리 세게 안 친 것 같은데 애가 너덜너덜거린다. 원래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약한걸까. 그래도 처음 생긴 내 가이드라 소중히 여겨주고 싶은데. ' ...힘조절하는 연습이나 해야하나.. ' 자..

글 연성 2024.06.10

단편-Backstory

[Easton Desmond] 살아남으려면 죽여야만 했다. 살아남으려면 죽도록 노력해야했다. 살아남으려면 남을 짓밟아야했다. 그렇게, 난 지금까지 살아왔다. 가족도 형제도 아무것도 없이. 그저 살아남기만을 갈망하며. 당신은, 그런 나에게 왔던 첫번째 봄이었습니다. [Libér] 모두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어딘가 나사빠진듯한 모습에, 옆의 아이와 비교하면 하찮기만 한 외모까지. 물론 그정도는 그녀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사소한 문제라면, 그 모두에 자신도 포함되어있었단 것 정도. 그렇기에, 그녀는 밝게 사랑해주던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Fel] 작은 아이는 늘 외로웠다. 차가운 실험실. 그저 아프기만 한 바늘. 딱딱할 뿐이었던 연구원들. 그런곳에서 작은 아이..

글 연성 2024.06.03